미륵의 꿈을 가진 천불천탑의 계곡-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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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彌勒). 석가모니 이후에 세상에 나타나 석가모니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래의 부처... 도솔천에서 수행설법중인 미륵보살이 나타나기를 염원한 중생들의 염원이 만들어 낸 천불천탑의 전설... 누워있는 거대한 돌미륵이 일어서면 세상이 바뀐다는 민중의 염원이 끝내 사그라든 슬픈 피안의 땅... 천불천탑.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초리 천불산에 있는 운주사를 표현하는 말이다.

 

 
세월의 무던함이런가? 천불천탑은 이제 80기의 석불과 17기의 석탑으로 남아 ‘천불천탑’을 증거한다.

1481년에 발행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사라지고 천불천탑만이 남아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석불 80기와 석탑 17기가 남아있지만) 1942년까지만 해도 석불 213기와 석탑 30기가 존재했다고 한다. 불교가 중흥했던 고려시대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어느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건립되었는지 또한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분명한 것은 미륵신앙이 민중에 회자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대가 살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쟁패를 하던 삼국시대가 그러했고 당나라와 연합한 신라에 의해 이루어진 통일신라가 그러했고 후삼국 시대가 그러했다. 전쟁이 많다는 것은 억울한 죽음이 많다는 것이다. 그 수많은 억울한 죽음과 피폐해진 민중이 기댈 곳은 미륵뿐이었으리라.

 


천불천탑을 세우고 와불이 일어서는 그날을 꿈꾸던 한 많은 민초들은 어찌되었을까? 역사는 세상이 뒤집힌 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민중이 일어서고 천년의 태평성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폐허가 되어버린 운주사는 증거하고 있다.




기존 질서와는 다른 불탑과 석탑 양식, 칠성바위와 같은 샤머니즘적 요소와 이름난 석공의 솜씨가 아닌 평범한 농부가 만든 것 같은 소박한 고졸미, 북두칠성의 별자리 위치와 밝기를 원형의 바위크기로 정확히 표현한 칠성바위, 뒤죽박죽인 시대별 양식의 혼재, 어느것 하나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공간이 운주사이다. 선암사 주지스님이셨던 지허스님께서는 “‘기존질서’가 세운 곳이 아니다. ‘땡추’들이 세웠으리라. 파격이다.”라고 지난달 만남에서 귀뜸하셨다. ('땡추'라는 표현은 운주사를 창건한 세력에 대한 비하의 뜻이 아니라 기존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

 


폐사지 같은 운주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총칼로 국민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정치군인들이 득세한 1980년 6월, 이곳이 문화재보호지역으로 지정되고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의 마무리 무대가 이곳 운주사로 설정되고 난 이후부터이다.

 
격변의 80년 6월에 문화재보호지역 설정이라? 일하는 공무원들은 어느 시대에나 있겠으나, 정치군인들이 민중의 염원을 구현할 미륵불을 보호하려했을까?
 암울했던 시대에 전라도 지역 지식인들은 권력의 눈을 피해 이곳 운주사에서 시대의 아픔을 토해내었고 피로 물든 80년 5월을 보낸 이후 권력자의 시선이 이곳을 주목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추측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반만년 역사속에서 미륵의 용화세상은 오지 않았고 수많은 지식인과 민중이 권력의 총칼에 쓰러져 간 독재의 시대인 70~80년대에 문학은 민중의 아픔을 격정적으로 토해내었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이 그러했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그러했다. 황석영은 소설 <장길산>의 마지막 무대를 이곳 운주사로 설정했다.

 
“세상의 모든 천민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 ”

 
역사속에서, 소설속에서 권력에 쓰러진 ‘장길산’의 염원이, 민중의 염원이 다시 세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80년 5월을 경험한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운주사는 쓰러져 간 역사속의 인물 장길산의 염원, 민중의 염원을 계승해야 할 약속의 땅으로 부활하던 공간이었다.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새 희망과 새 의지로 새롭게 시작한 또 다른 하루이다. 이제는 '민중'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퇴색되어버렸지만 80년대를 경험한 죄인이기에 단단한 부채의식이 존재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민중! 아니, 국민이 힘들어 하는데 그걸 모르는 위정자가 존재한다면 시대를 초월해서 또 다른 형태의 ‘미륵’은 등장한다. 소통하지 않고 군림하는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새해가 밝았으나 북악산 위정자의 판단력은 흐린듯하다. 70년대의 암울했던 권력의 그림자가 스멀거린다. 또다시 부끄러운 80년대를 경험해야 하는가?

 
운주사가 그립다. 아! 미륵이 그립다.

 

 

처음 운주사를 알게 된 것은 80년대 후반 소설 <장길산>을 통해서였지만 마지막 불탑을 세우지 못하고 끝내 좌절해버린 오지 않는 미륵에 대한 실망감이었을까? 머릿속에서 잊혀졌던 아니 각인되지 못했던 천불천탑에 강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 1997년 학고재에서 출판된 <미륵-운주사 천불천탑과 용화세계>란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독일 함부르크 미술대학의 교수인 요헨 힐트만이 1985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래로 한국의 전통문화에 매료되어 발간한 <미륵-한국의 성스러운 돌들>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이 책에서는 지금과 같이 변해버린 운주사가 아니라 논밭으로 사용되던 운주사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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