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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1/14 진보를 표방하는 한겨레, 'SEX'를 팔다.
- 2009/11/03 대한민국 헌법 1막1장
- 2009/10/11 미화원 대기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아닌가?
- 2009/10/10 아! 바보 노무현!!
- 2009/10/08 천일염의 고향, 비금도를 가다
- 2009/03/13 '메가패스 장군'의 갑옷을 벗겨라!
- 2009/02/23 공간, 그리고 차별 (누구를 위한 뉴타운인가?)
- 2009/01/31 왼손잡이 & 차별 (2)
'네이버'에 드리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색깔론?
어제(2009. 11.26)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발간에 대응하기 위해서 보수단체들이 친북좌파인명사전을 발간하겠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보수세력이 이념 논쟁으로 전선을 확대하여 친일인명사전의 발간 의미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엿보여 씁쓸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친일인명사전이 어떠하기에 보수가 저리 발광을 하나?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편집이 보여 이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인터넷 활용에서 정확한 의미파악을 위해서 사전을 자주 검색하는데 친일파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그 개념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다음은 '네이버' 국어사전의 '친일파' 검색결과입니다.
'네이버', '야후', '다음' 등 대표적인 포털사이트의 국어사전에는 '친북파' 또는 '친북좌파'에 대한 검색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네이버'의 국어사전에 대한 '친북좌파', '친북파'에 대한 검색결과입니다.
'친북파'나 '친북좌파'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희박하거나 개념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어사전'에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라 판단됩니다. '친북파'니 '친북좌파'라는 공격은 진보세력에 대한 색깔공세로 시작된 반증일 수 있겠다 싶습니다.
'야후'에서는 '친북좌파'에 대한 전체사전검색을 하면중화인민공화국 관련 데이터 이외에는 검색값이 노출되지 않았습니다. '친북파'에는 해당 검색 데이터가 존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네이버 전체사전' 검색을 하면 다음과 같은 검색 결과가 나타납니다. '다음'에서는 '네이버'와 같이 위키피디아의 '주체사상파(친북좌파)'에 대한 검색 결과가 나타나지만 '네이버'와 같이 노무현 前대통령이 연관검색으로 노출되지 않습니다.
'다음'의 '주체사상파', 또는 '친북좌파'의 전체사전 검색 결과. 노무현 前대통령에 대한 검색 결과가 노출되지 않는다.
점심식사자리에서 등장한 주체사상파
네티즌들이 만들어가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 줄여서 주사파)는 남한에서 민족 해방 계열의 하나로, 북조선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그것에 따른 정치운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전에는 이들을 특별히 가리키는 말이 없었으나 1994년 7월 18일 서강대학교 박홍 총장이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대학 총장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대학에 주사파가 깊이 침투해 있다고 발언한 후 주사파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점심식사자리에서 등장한 용어?(그것을 확대재생산한 한국사회?),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한 신중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 아닌가요? 위키피디아 본문에서도 ‘21세기에도 주체사상파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할 수는 없으나, 박홍의 말처럼 대한민국 내에 주체사상 지지자가 많다고 볼 근거는 부족하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대표적인 포털인 '네이버'가 '주체사상파' 바로 밑에 노무현 前대통령 관련 데이터를 노출시켜서 노 前대통령을 '친북좌파' 또는 '주사파'로 오인(誤認)할 수 있는 편집구성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前대통령의 검색 데이터는 위키피디아가 아닌 네이버 백과사전 데이터입니다. 노 前대통령이 주사파라고 할 어떠한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친북좌파=주사파(주체사상파)=노무현 前대통령'으로 오해가 가능한 편집을 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前대통령을 '주사파(주체사상파)' 또는 '친북좌파'라고 규정할 객관적이고 명백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리수가 있는 편집이 아닌가 판단됩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보수 세력의 색깔공세에 '네이버'가 동조한 것인지, 아니면 실수로 올린 것인지는 판단이 불가능하지만 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포털의 자체검색데이터가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더구나 검색에 자신있다는 '네이버'가 말입니다.
'네이버'의 수정을 요구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두분 전직 대통령의 영면(永眠)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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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를 일컬을 때 흔히 쓰는 말일게다. 친구. 혈기방장하던 20代 때만해도 날을 밝혀가며 떠들어도 뭔가 모자라던 그 이름. 친구.
어느덧 불혹의 나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에 들었지만 세상살이에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잊고 살아가는 나이. 해를 묵을수록 좋아지는 것이 친구라 했던가? 몰랐었다. '벌거숭이 친구'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공유하는 부분이 작아지기도 하더라. 그저 나이 먹으면 장맛처럼 더 끈끈할 줄 알았더라.
내 친구. 똘레랑스 김종욱. 광화문에 세종대왕 오시던 날, 홍대 앞에서.
‘세상살이가 가르쳐 준 교훈’도 잊고 친구라는 말 한마디가 좋았더랬다.
‘삶이 속인다’던가? ‘없는 돈 만들어서라도 빌려달라’던 사람은 어찌 그리도 쉽게 친구라는 소중함을 던져버렸을까? 더 배우고 싶어서 유학가려고 할 때 ‘잘 갔다 오라’는 말보다는 ‘돈지랄 떤다’고 말하던 친구는 왜 그랬을까? 군대 뒷바라지는 내가 다하다시피 했는데 그건 왜 '돈지랄'이 아니었을까?
나이를 먹어가면서 얻는 것이 삶의 경험이고 잃어가는 것이 꿈이라던가? 난 아직도 꿈을 꾸고 산다. 그 꿈 때문에 ‘나이 값’ 못한다는 '멍애'를 달고 살아간다.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꿈이다. ‘개꿈’이 될지라도 난 꿈을 꾼다. 그건 나에게 생명이다. 그것이 친구를 불편하게 하는가?
난 직설적이다. 그 직설적인 것이 ‘나에게 더 불편한 것’임을 안다. 직설적인 성격을 얻은 대신에 상대를 속이는 거짓은 얻지를 못했다. 친구라던 사람들이 나를 속일 때 나는 그들을 속이지 않았다. 눈앞에 것을 쫒지 않았는데 그들은 당장의 무엇을 요구한다. 난 줄 것이 없다. 있을 때는 주었다. 그것이 사라지면 떠난다는 것을 삶이 가르쳐 주었더라. 그래도 주었다. 친구이기에.
황금기라는 30대 중반에 5년 가까운 시간을 여의도에서 보냈다. 사람이 도구가 되는 공간에서 5년의 시간을 '저당 잡혔다'. ‘친구따라 강남간다’더니 난 여의도였더라. ‘정치적으로 힘들게 하던 친구’가 있었다. 날 '왜 그렇게 힘들게 했냐'고 물었더니 내가 ‘정치적으로 변해가는 것이 싫었기에 그랬다’더라. 자신의 정치적인 행위는 용납이 되고 친구가 정치적인 것은 용납이 안되는 관계가 친구였다더라. 다른 의견이 공존하는 곳이 정치인데 다르면 그것이 '정치적인 것'이 되더라. 그 친구를 위해서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난 경계인이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럽다. 그들은 알까? 텅 빈 집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24시간 불을 켜놓고 사는 것을? 그들은 알까? 혼자라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가끔 잠적한다는 것을? 더 이상 취하고 싶지도 않다. 이제는.
지음(知音)이라던가?
백아와 종자기의 아름다운 관계. 친구끼리 '잘먹고 잘살게 되는 결과'가 아니라 ‘내 소리를 알아주는 이가 없기에 더 이상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는 백아. 그 아름다운 우정을 세상은 백아절현(伯牙絶絃)이라 하던가?
삶에 ’나를 알아주는 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내가 '세상을 보는 눈'. '세상과 호흡하는 가슴'을 알아주는 친구. 그것만큼 좋은 친구가 있던가? 휴먼파크. 내 삶의 지향점이다. 똘레랑스. 친구의 이니셜이자 지표이다. 내 친구의 삶이다.
여의도가 힘들어 짐 싸들고 나왔던 날이 있다. 더 빨리 나왔어야 했는데 (결국은 또 들어갔다).
“이렇게 가는구나!“
떠나는 그 날. 눈물이 그렁하던 친구의 선한 눈. 그 친구의 눈물이 나를 ‘친구’로 만들었다. 그런 눈물은 이성이 만들어 내지를 못한다. 여의도가 만들어 내지를 못한다. 이성이 있으되 감성이 부족하지 않은 친구. 힘듦을 극복하는 친구. 표출하지 않되 표현하는 친구. 기다릴줄 아는 태공망(太公望).
그 친구 이름은 김종욱이다. 내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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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색저널리즘에 무너진 '한겨레 신문'
한국시리즈 우승팀 기아 타이거즈와 일본 시리즈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격돌한 14일 오후, 한일 챔피언십에 대한 기사를 검색하려고 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네이버’에 접속하여 한겨레의 기사를 검색하는데 ‘쉽게 주면 가벼운 여자인가요?’ 라는 자극적인 기사가 메인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해방이나 성담론을 논하는 기사와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관계를 일찍 허락하면 ‘쉬운 여자’로 비추어지는가에 대한 상담형태의 칼럼입니다. 쉽게 허락하던, 허락하지 않던 간에 자발적 선택으로, 피임이 가능한 상대와 정말 하고 싶을 때 하라는 ‘충실한 답변’이 결론입니다. 마지막이 걸작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내 몸 함부로 굴릴 자유마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어른하나요.’
이쯤 되면 80년대 주간지 수준입니다. 사회가 개방되고 유연해졌기에 ‘80년대식 시각’이 문제가 있습니다만 진보적인 언론매체가 이러한 형태로 기사화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들었습니다. 한겨레가 이런 ‘섹시한’ 헤드라인을 뽑아낸 것에 대한 불쾌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진보, 비진보를 떠나서 요즈음 인터넷 포털(PORTAL)은 관음증의 '토탈(TOTAL)', '풀 패키지 서비스(FULL PACKAGE SERVICE)'를 방불케 합니다. 연예인들의 노출에서부터 시시콜콜한 뒷담화 까지, ‘18금’을 무색하게 하는 자극적인 기사가 넘쳐납니다. 어떤 신문사의 광고는 ‘그녀가 왜 미니스커트를 입고 산에 가야 하는지’까지 알게 해줍니다.
방문객이 많아야 수익이 많아지는 인터넷 환경에서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비정제된 용어들이 난무합니다. 스포츠신문, 경제신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 중아, 동아는 물론 진보적이라는 경향과 한겨레까지 똑 같습니다. 인터넷 매체인 오마이뉴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언론이 과연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이 듭니다.
‘빵’을 선택한 대한민국 언론
언론은 사회의 공적 영역입니다. 그러한 언론이 원칙과 도덕성을 경제적인 가치와 교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분명한 것은 사회가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정상, 비정상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못하며 양심을 ‘빵’과 바꾸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던 ‘코페르니쿠스’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먹고 살기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구요? ‘배고픈 돼지’의 푸념처럼 들립니다. ‘조중동’에게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던가요? 비진보적인 매체들이 원칙과 정의를 버리고 펜을 꺾어버리는 것은 비판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보수언론을 비판하는 진보적인 매체까지 펜을 꺾어버리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겠습니까? 방문객을 높이기 위해(경제적 이득을 위해서) 자극적이고 관음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고 메인에 노출시키는 행위를 묵과해야 하겠습니까?
인터넷은 낚시터인가?
많은 언론이 특종기사나 클릭율이 높은 기사가 인터넷에 업데이트 되면 실제로는 취재를 하지 않고도 그 기사를 바탕으로 ‘새로운 기사’를 작성하여 별다른 내용도 없이 헤드라인만 더 자극적인 것으로 바꾸어 ‘낚시질’을 하고 있습니다. 기자정신은 던져버리고 네티즌을 ‘낚아버리는 강태공’이 양산되고 있는 것입니다. 자극적인 헤드라인과 별다른 내용도 없는 기사내용은 지난 시절 여성지의 주종목이었습니다. 황색저널리즘과 센세이셔널리즘으로 중무장한 여성지들의 주특기를 요즈음은 거의 모든 매체들이 다투어 따라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염되고 황폐해진 언론 환경을 살기위한 ‘밥그릇 싸움’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언론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대합니다.
‘루저의 난’, 과연 ‘홍대녀’만의 잘못인가?
공영방송인 kbs에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외국인의 시각으로 우리 한국의 내부를 되돌아보고 우리가 모르거나 잃어버린 글로벌 시각을 외국인에게 직접 들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하여 성공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과 불편한 진행으로 수차례 구설에 올랐습니다. 오락프로그램에 언론의 역할을 요구하는 것이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만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KBS이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KBS 또한 시청율이라는 절대명제의 노예가 되어 버린 지 오래입니다. 이번 ‘루저의 난’은 한 여대생의 개인적인 견해가 여과 없이 공중파를 통해서 송출된 것은 제작진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라 하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승리자와 패배자로 구분 짓는 이분적인 사고를 피력한 ‘홍대녀’ 또한 반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글로벌한 시각’을 표방하는 ‘미수다’이니 ‘글로벌’하게 외연을 확장시켜 보겠습니다. 미국의 공중파에서 출연자가 유색인종을 패배자로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출연자의 개인적인 의견이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발상은 어린 아이에게 총을 쥐어주고 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출연자 또한 제작진이 써준 대본에 ‘루저(LOSER)’라는 표현이 있었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다고 했는데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무수한 개구리가 죽어버린 결과'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미디어 오늘’에 보도된 내용을 보면 ‘미수다’ 제작진이 교체되었는데 강선규 KBS 홍보팀장은 "선임 PD와 이번 사안과 직접 관련이 있는 작가들이 스스로 파문이 일어난데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먼저 얘기를 해와서 간부들이 고심 끝에 수용한 것"이라며 "이 사건은 비뚤어진 인터넷 문화와 접목돼 굉장히 파문이 커졌기 때문에 이렇게 조치한 것으로 정치적인 해석은 말아달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에 지나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과연 그 인터넷 문화라는 것이 한국사회와 동떨어져서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영역입니까? 비뚤어진 인터넷 문화라는 것이 네티즌에 국한하는 것인지 컨텐츠를 공급하는 영역까지 포함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인터넷 문화 때문에 파문이 커졌다는 인식에 아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공중파라는 사회적 공적영역을 비뚤어진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허약한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어느 개개인의 잘잘못을 판단하기에 앞서 중요한 측면은 모든 사안을 승리자와 패배자로 양분하는 사회분위기가 더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이분적인 사고방식을 알게 모르게 주입하는 언론의 행태가 가장 먼저 비판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수다’ 제작진이 이러한 이분적인 사고방식을 한국사회의 현상으로 ‘가볍게 바라보았기 때문’에 게이트 키핑(GATE KEEPING)이 안된 것은 아닐까요?
역설적으로 자기가 속한 측면만 부각하고 상대방은 억압하는 한국사회 구조에서 과연 이 보다 더 솔직한 발언이 어디 있을까요? 해당 여학생에게 표창장을 수여해야 될 지도 모릅니다. ‘미수다’ 제작진이 신세대 여대생들의 솔직한 가치관을 알고 싶었다면 나름 성공한 프로그램 아니었을까요? ‘내 편과 네 편’에 대한 구분이 가장 명확하면서도 가장 모호한 사회가 대한민국 아닙니까?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원칙과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대박(승리)’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 아니겠습니까?
본질은 무엇일까요?
원칙과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힘’이 최우선이라는 사실입니다. 언론의 기능을 버리고 ‘더 많은 방문객과 더 많은 금전적인 이득’을 위해서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기사를 양산한 언론이 그 기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공고화 된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원칙과 정의를 찾고 무너진 대한민국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언론이 바로서야 합니다. 클릭율을 높여서 빵을 사기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양산하는 대한민국 언론들이 반성해야 합니다. 당신들의 양심이 대한민국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펜을 던져버리고 빵을 집어든 대한민국 언론’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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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1막 ; 오블리제(責務 ; oblege)
법정신을 지켜낸 주권(主權 ; sovereignty) ; 용간난 할머니
산불을 내고 세상을 뜬 남편을 대신하여 변상금을 20년 동안 갚아나간 용간난 할머니를 기억하십니까?
79년 3월 16일, 강원도 홍천읍. 어려운 살림에 ‘봉양’이라는 한약재를 캐러 산에 갔던 이두봉 할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담뱃불로 1만 6천여 평의 잣나무 숲을 태워버린 날입니다. 그날의 실수로 이두봉 할아버지는 징역 5개월에 변상금 123만157원을 부과 받았고 징역을 치르고 나와서 제재소에서 일용잡부 생활을 하면서 변상금을 갚아 나가던 84년, 할아버지는 중풍으로 쓰러져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준법정신이 뭔가를 일깨워준 자랑스러운 용간난 할머니.
세상을 뜨기 전에 이씨 할아버지는 변상금을 갚지 못하면 자식들이 내야한다며 용간난 할머니에게 변상금 납부를 유언하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할아버지 일행이 갔던 산에서 불이 났고 그걸 마을 주민이 신고를 해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두봉 할아버지는 친구에게 둘 다 징역 갈 필요가 없다며 혼자 징역을 살테니 변상금만 나누어 내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같이 산에 갔던 친구는 변상금 분납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 할머니가 떠 않게 된 것입니다.
10만원을 주고 산 작은 땅에 14평짜리 작은 집이었지만 가난한 살림에도 금슬이 남달랐던 부부에게 변상금은 자식들에게만은 물려주지 말아야 할 ‘부모의 마음’ 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할머니에게 남겨진 돈은 전날 일용노동으로 받은 7천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어렵게 변통한 20여 만 원으로 장례를 치르고 나니 손바닥만한 집 한 칸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공무원 초임이 10만원 안되던 시절에 100만원이 넘는 변상금은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용간난 할머니의 미담을 소개한 신문과 용할머니 칼국수집을 다녀 간 국민들의 응원메시지.
용간난 할머니의 삶은 고난 그 자체였습니다. 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12살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큰 오빠 밑에서 성장한 할머니는 21살 되던 해에 이두봉 할아버지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4명의 자식을 두셨습니다.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오순도순 사셨는데 산불이 나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용간난 할머니는 낮에는 남의 농사일을 돕고 새벽과 저녁에는 홍천 시장통의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몸이 부서지는 노력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조금씩 할아버지의 벌금을 분납해나가다가 드디어 2001년 9월 나머지 변상금을 완납하셨습니다.
남편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기쁘다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제 저승에서 편히 쉬실 수 있을 것’ 이라며 20년 고난의 세월에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그 양반 생전에 산불 낸 것 가지고 얼마나 가슴아파했는지 몰라요.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빚을 다 갚아 저승길을 홀가분하게 해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난 2005년에 찾아뵈었을 때 할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연은 자칫 묻혀질뻔하다가 지난 2001년 북부지방산림청 홍천국유림관리소 이순옥씨에 의해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칼국수집을 하시는 용간난 할머니. 당시 국민들의 성금 600여 만원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기사 내용을 보면,
“81년말에 한 초로의 아낙이 찾아와 산불 변상금을 조금씩 나눠 낼 수 있게 해줄 수 없느냐고 사정을 했는데 당시 100만원 쯤 남아 있었습니다.”
그 후 다른지역에서 근무하다 86년에 돌아왔을 때는 70만원이 남아있었고 서무계장으로 부임한 2000년 12월에는 10만원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 이름으로 변상금 10만원이 남아 있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20년 뒤까지도 돌아가신 분 명의의 변상금을 꾸준히 갚고 계실 줄이야….”
20년 동안 돌아가신 분을 대신해 변상금을 꾸준히 갚아온데 감동한 이계장은 마지막 10만원을 자신이 대납하고 용할머니를 찾아갔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1장 ; 노블리스(貴人 ; nobeless)
법 정신을 파괴한 권력 ; 헌법재판소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을 기억하십니까?
1조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1조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에서 인권과 주권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자 최후의 보루입니다. 가장 중요한 절대명제이기에 대한민국 헌법 1조1항에 이어 1조2항을 둔 것입니다. 민주주의(민주공화국)가 무엇일까요? 1조2항에서 말한 주권이 국민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권은 무엇일까요?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는 최고의 권력(권한)입니다. 사회가 다원화되고 복잡다난해지면서 국가의 의사결정행위는 직접민주주의에서 대의민주주의로 바뀌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정치행위는 국민의 의사에 기반한 행위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 의해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주권이 대리실행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행위과정에(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의사, 즉 주권을 행사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재투표, 대리투표와 같은 절차상의 문제로 만들어진 법이 올바른 주권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법률이 유효하다면 이것은 정당한 것일까요?
며칠 전, 전여옥 의원이 ‘자신들의 투표행위에서도 소수의 횡포에 의해 침해받았다’고 시사토론에서 말했습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당한 절차를 행할 수 없게 하는 행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가 증명한 발언입니다. '소수인 너희들이 방해를 해서 다수인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되는 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한 행위는 정당하다'는 논리는 궤변입니다.
다수결의 논리(민주주의가 다수결의 동의어인가?)
다수결은 민주주의에서 기본원리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다수결이 항상 옳은가'에 대한 확신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다수의 힘에 의해서 불편부당한 부정한 것이 강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주장을 강요하는 것 또한 문제가 크므로 다수결이 민주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다수결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다수결 과정에서의 충분한 토론과 언론의 자유가 폭넓게 보장되어야 하며, 소수자의 권리가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첨예한 사안에서 다수의견을 넘어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수자의 견해가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실행에 있어서는 소수자의 의견을 수용하여 보완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전제입니다.
'광포한 힘' 함몰되었던 일본 제국주의. 욱일승천기를 두른 일본 우익. 야스쿠니신사에서 2005년.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원칙이 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자유와 소수 의견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다수자의 의견에 부합하는 언론에 유리한 법률을 제정하는 사안은 더더욱 소수자의 의견과 견해를 충분히 반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과정에 다수결의 횡포가 존재한다면 이것을 정당한 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소수의 횡포가 문제라구요? 다수의 횡포와 소수의 횡포. 어떤 것이 더 무서울까요? 모든 사안을 다수결로 정해봅시다. 모든 사안에서 '내'가 다수일 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소수가 될 것입니다. 다수가 소수를 인정해야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타인에 대한 인정.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입니다.
'법정신'이란 지위고하, 성별, 지역, 종교, 이념, 빈부의 차이에 상관없이 헌법이 정한 원칙과 정의를 수호하는 것 입니다. 헌법이 정한 원칙과 정의는 국민의 주권과 인권을 수호하는 것입니다. 주권과 인권을 지키는데 그 어떤 차별적 요소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러하기에 헌법은 가장 완결적인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 헌법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면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청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법정신을 구현하는 최고, 최후의 신성한 존재입니다.
헌법재판관 9인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부여한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대한민국이 권력에 굴복한다면?, 원칙과 정의라는 법정신을 교언영색한다면!, 대한민국이 올바른 국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과정에는 문제가 있지만 결과는 유효하다! ??
무서운 판결입니다. 다수의 횡포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반민주적인 판결입니다. 과정에 문제가 있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헌법재판소 판결결과를 놓고 보면 다수에 의해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배제하는 어떤 행위도 다수결로 결정되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민주주의가 될 수 있습니까? 행위에 문제가 있으나 결과를 처벌할 수 없다면 그것이 올바른 헌법정신입니까?
3권분립에 기초하여 입법부의 권한을 침해할 수가 없기에 입법행위 과정은 문제가 있으나 결과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해석은 자칫 헌법(사법부)을 입법부 아래에 두는 인식이 아닐까요? 야만의 정치집단이 국회권력을 장악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법안을, 비민주적이고 위헌요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결과를 인정한다면 헌법재판소가 존재해야 할 근거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춘천시내에서 언론악법 폐지시위를 하는 시민.
헌법재판관을 탄핵할려고 해도 국회의 동의를 받아서 나머지 헌법재판관들이 심의를 하는 구조에서, 헌법재판관들이 다수의 국회권력에 눈을 돌리게 된다면 올바른 법정신이 구현되는 민주공화국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다수결이 민주주의라는 허구'부터 바뀌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은 요원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1항을 무력화시키는, 민주주의의 원칙과 이념을 파괴하고 권력에 대한민국 헌법 제 1조1항을 기부체납한 헌법재판관을 탄핵합니다. 용간난 할머니의 준법정신이 새삼 존경스럽습니다. 용간난 할머니 같은 소시민이 지켜낸 대한민국 헌법을 막장드라마로 만들고 계신 '높은 양반들'께 묻고 싶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잘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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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
며칠 전 부산의 모 대학에 취재를 갔다가 쉬는 시간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안내판이었는데 이 날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점이 눈에 들어오시는지요?
저 안내판을 보는 순간 '저건 빨리 바꾸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날 해당 대학에서 받은 불쾌함 때문이었을까요? 대학학생회에서 주관한 특강을 촬영하러 간 것인데 주차할 공간이 없더군요. 학교를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 나 돌았는데도 주차환경을 바꿀 만한 문제의 정답은 없었습니다. 촬영은 해야겠고 비좁은 학교 주차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대학본부에 협조를 구하여 교직원들이 사용하는 대학본부 건물 옆 직원 주차장에 비상등을 켜놓고 운전석에는 이러이러해서 잠시 주차중이라는 글을 게시해 놓았습니다.
촬영중간에 장비 교환을 위해서 세차례 차에 다녀왔는데 그 때마다 그 대학 직원분들이 차 빼라고 성화시더군요. 대학관계자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설명을 하는대도 빨리 차 빼라고 막무가내였습니다. '학교 행사때문에 왔고 허락을 받았는데 그래도 안되냐'고 했더니 '누구에게 허락을 받았냐'고 '그 사람이 누구냐'고 묻더군요.
주차 때문에 잠깐 뵌 그 분 성함을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심각한 대학의 주차공간 그리고 대기실(?)
옆에는 빈 공간이 확보되어 있어서 다른 차량의 주차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운전석에 써 놓은 메모도 읽지 않으신 것 같았습니다. 비상등을 켜놔서 빨리 나가려는 차인줄 알고 빼라고 성화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대학 행사때문에 들어온 차를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대학 교직원들이 사용하는 주차공간에 대학관계자의 허락을 받고 약 1시간 정도 주차를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재촉의 대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약간 언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다행히도 그 분이 이해를 해주셔서 주차문제는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이야 그렇다 치고 잠깐 동안의 융통성도 없어 보이는 대학 교직원들에게서 특권의식이 느껴졌습니다. 자신들의 영역에 외부의 차량이 들어와 있으니 영역보호 본능이 작용을 한 것일까요?
불편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그분들과 약간의 마찰을 일으키고 커피 한잔을 하려고 화장실에 가는 순간에 저 안내판이 확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제 눈에 무엇이 들어왔을까요?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사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미화원은 차도, 인도 따위의 거리나 공공건물, 학교, 병원, 사무실, 아파트 따위를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대기실은 대기하는 사람이 기다리도록 마련된 방으로 '기다림방'으로 순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곳의 미화원 대기실은 학교를 청소하는 사람이 기다리도록 마련된 방이라는 뜻이군요. 휴게실은 잠깐 머물러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방이란 뜻입니다.
미화원 대기실 보다는 미화원 휴게실이 적절
미화원 대기실은 말뜻 그대로라면 청소를 하는 사람은 쉬는 시간도 없이 일을 하거나 대기해야 하는 건가요? 미화원 대기실이나 미화원 기다림방 보다는 미화원 휴게실이 더 적절하지 않습니까?
근로기준법 제54조(휴게) 제1항에서는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인류학자 사피어는 언어가 사고(思考)를 규정한다고 했습니다. 법으로 정해진 휴식시간까지 대기시간이 되어버리는 저 안내판을 바꾸는 건 어떨까요? 시설에서 청소를 담당하시는 미화원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상당수가 파견근로자나 비정규직이시던데 혹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적 시각이 들어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정규직들의 휴게실이 대기실은 아닐 것 같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배움터인 대학건물에는 더욱 부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단순하지만 이러한 안내판 문구부터 바꾸어가는 것이 인권국가 대한민국의 내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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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서울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잠에 빠졌다. 늦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더니 추모 현수막이 보였다. 자신들이 부정했던 대통령을 추모하는 민주당에 분노가 느껴졌다.
서울을 가로질러 경기도 부천으로 향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만들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부천 상동에 마련된 분향소에 연이어 시민들이 분향을 하고 있었다. 시민들이 마련한 자발적이라던 분향소에 정치색이 보였다. 민주당의 그림자가 보였다. 상주를 자처한 민주당이지만 노사모와 함께하는 그들이 반갑지가 않았다. 씁쓸함과 서글픔이 교차되었다.
부천 상동역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저들'을 표현하는데 이만한 표현이 또 있을까? 이념과 철학이 없는 정당은 단순한 이익집단일 뿐이다. 지금의 민주당이 그렇다. 이익집단. 그들은 대통령을 버렸고 대통령은 자신을 던졌다. 아무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했다. 분향소 주변에서 몇분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해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 또 다시 잠에 빠졌다.
늦은 아침을 먹고 서울 역사박물관에 마련된 정부 공식 분향소를 찾아갔다. 시골에서 농사짓고 환경운동하겠다던 그 대통령이 죽었다.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이곳이 쓸쓸했다. 뭔가 빠졌다. 뭘까? 뜨거운 날씨에 고통스러웠다.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려는데 경찰 사이드카가 지나갔다.
'뭔가 있다. VIP다. 누굴까?'
다시 분향소로 들어갔다. 입구가 소란스럽다. 박근혜 전 대표였다.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살아있는 권력이 죽은 권력에게 예를 표했다. 그녀가 사라지자 다시 분향소가 적막했다. 그렇다. 이곳 분향소에는 진정성이 보이지를 않았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에 슬픔이 표출되지 않았다.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곳에는 애도의 진정성이 보이지를 않았다. 가진 자들이 이곳을 다녀갔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정부공식분향소에서 조문하는 박근혜 전 대표.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진정성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김종욱 박사와 통화를 했다.
'봉하마을에 내려가자.'
친구에게 이 죽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지 의견을 물었다. 신중한 친구는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난 '영남 진보개혁세력에게 큰 정치적인 자산이 생겼다. 이제 호남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원초적 컴플렉스에서 벗어날 계기가 생겼다. 아울러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큰 숙제를 남겨주었다. 이제 출발점이다' 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봉하마을 입구는 차량과 사람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으나 차분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가 않아서 봉하마을 입구의 공단 근처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들어갔다. 조문객들로 가득했다. 2시간여를 기다려 조문을 했다. 상주자리에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보였다. 묘한 적개심이 일었으나 예의를 차렸다. 김종욱 박사가 함께 일했던 NSC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 사이에 봉하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입구에서부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노대통령을 추모하는 플랭카드가 가득했다.
봉하마을 주차장에 마련된 분향소. 수 많은 국민들의 분향이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봉하마을에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체감이 존재했다. 촬영을 끝내고 나오는데 김종욱 박사가 물었다. 한 사람 더 탈 수 있냐고? 그러자고 했다. 김박사와 같이 오신 분은 전 통일부 이종석 장관이셨다. 차가 없이 오셨단다. 김 박사가 북한이 왜 미사일을 쏘았을까를 물어보니 잘 모르겠단다. 현 정부들어서 공유하던 정보가 끊어져서 자세히 파악하기가 어렵단다. 그런데 북한을 지칭하는 장관의 표현이 뜻밖이었다.
'그 놈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 지----.'
보수세력들이 좌빨이라고 반대하던 전직 통일부장관의 표현치고는 과격(?)했다. 다음날까지 2시간 넘게 지켜본 바로는 전혀 좌빨스럽지 않고 오히려 내가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신중했다. 그리고 겸손하고 부드럽다. 이런 사람을 좌빨이라니. 색깔론치고는 이런 색깔론도 없겠다. 김종욱 박사에게 물었다.
'전직 장관이 비서도 없냐?'
그랬더니 차도 없단다. 미국에서 비행기 값이 없어서 이코노미 끊었는데 주변의 도움으로 간신히 왔단다. 전직 장관이 차가 없다? 이건 의외였다. 위장전입은 기본이고 불법과 탈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현 정부의 인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봉하마을 입구에 걸린 추모 현수막. 아! 슬프다. 대한민국.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이른 아침에도 봉하마을은 조문객으로 가득했다. 봉하마을의 일체감을 뒤로하고 서울로 발걸음을 돌렸다. 계속되는 운전으로 피로가 누적되어 종일 잠을 잤다. 밤 늦게 서울 시내로 나왔다. 노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불교쪽이 궁금해 종로에 있는 조계사를 향했다. 밤 늦은 시간이어서 경내는 한산했으나 몇분이 노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었다.
서울 조계사 경내에 마련된 분향소. 늦은 시간에도 몇분의 신도가 노대통령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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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많은 분들이 밤늦은 시간에도 어떤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현하고 있었다. 저 많은 추모의 물결은 무엇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 비극적인 죽음의 주인공을 이렇게 인정하고 살아왔던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이 상황은 분명히 비정상이었다.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더니 이것도 노무현 때문인가? 분노가 일어났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야만이고 광기다. 모든 사람이 물어 뜯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머리를 숙이고 죽음을 애도하다니.
대한문 앞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덕수궁 돌 담에 붙은 추모글을 읽어보는 시민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대한문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조문하는 시민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서울역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주변의 취객 몇분과 노숙자 몇분이 횡성수설하고 있었지만 그들도 노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어느 장애우께서 그나마 자신들을 위해서 가장 많이 해 준 대통령이었다고 회상하고 있었다.
오전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몇시간을 기다렸다. 거동이 불편하신 것이 역력했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두서너 걸음 발걸음을 옮겨 애도를 표하고 다시 휠체어에 몸을 기대셨다. 김영삼정부 시절 노동법에 대한 항의로 서명운동을 이곳 서울역에서 했었다. 그 때 뵙고 다시 서울역에서 뵙게되었다. 내 몸의 반이 무너진것 같다던 전직 대통령.
서울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그 전직 대통령이 또 다른 전직 대통령의 죽음에 깊이를 알 수 없는 슬픔을 표현했다. 그것이 내가 직접 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영결식 날 아침. 영결식장에는 들어갈 수가 없어서 시청앞으로 갔다. 이른 시간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고속도로를 달려 경북궁에 도착했다. 여기저기 카메라가 넘쳐났다. 그래 이 날을 기억해야 한다.
시청앞에 모인 수 많은 시민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영결식이 진행되는 동안 시청 앞에는 사람들이 더욱 더 많아졌다.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운구차가 시청 앞으로 향하고 한 덩어리가 된 시민들의 행렬에 가로막혀버렸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이곳저곳을 알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서울시의회 옥상은 공보담당자가 요지부동이었다. 국세청 건물은 경비가 함부로 들어오는 곳이 아니라고 내쳤다. 권력기관은 이렇다. 그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모른다. 죽은 권력이 살아 있는 권력에 의해 시해되었는데 그걸 모른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시민들과 함께 서울시청 앞을 지나고 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다시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앞으로 노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지나갔다. 사람들의 인파에 밀려 운구차의 진행이 더디었다. 젊은 여자가 운구차의 앞을 가로막고 지나갔다. 진행요원이 원활한 이동을 위해 양보를 구했으나 그녀는 기자라며 이를 거부하고 계속 운구차 앞을 가로질렀다. 분노한 시민이 어디 기자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렸으나 그녀는 외면했다. 참다못해서 내가 물었다.
'어디서 나오셨어요?'
그녀는 역시나 외면했다. 그건 언론이 아니었다. 또 다른 권력이었다. 그 언론이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었지만 참았다. 저건 똥이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더러워서 피했다.
운구차량이 시청앞을 지나 서울역 앞으로 향했다. 재빨리 이동하여 서울역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에 자리를 잡았다. 몇몇 사진기자들이 대기중이었다. 사람들의 파도가 밀려왔다. 노대통령을 떠나보내기 싫은 수많은 시민의 물결 위에 노무현 대통령이 떠내려오고 있었다. 울긋불긋한 만장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불에 탄 숭례문을 배경으로 민심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수 많은 인파에 빠져버린 운구행렬.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서울역 앞을 지나가는 운구행렬.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노무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역을 지나서 용산을 향해 이동할 때 국회를 가 보았다. 텅 빈 하늘 아래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검은 장막이 국회의사당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국회를 나와서 지하철을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수원 연화장까지 가서 그 분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었다. 정치적으로는 그 분의 입장을 비판했지만 인간 노무현, 바보 노무현을 사랑하고 존경했기에 그 분을 쉽게 떠나 보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미안했다. 정치인 노무현으로만 해석했던 지난 날이 너무나 미안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운구차량이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시간의 국회의사당 전경.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꾸벅꾸벅 졸다가 수원역에 도착해서 연화장 들어가는 초입까지 택시를 탔다. 셔틀버스가 운행된다고 해서 셔틀버스를 타려고 했더니 경찰들이 셔틀버스 운행을 중단시키고 있었다. 운구차량이 도착할려면 한참이 남아있었다. 운구차량에 방해도 안되는데 왜? 화가났다.
4Km가 넘는 길을 20Kg이 넘는 가방을 메고 걸었다. 한시간 넘게 걸었다. 땀이 비오듯 했다.
수원 연화장으로 가는 입구의 시민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보다 먼저 도착하려고 막판에는 뛰다시피 했으나 연화장 입구에서 경찰이 또 가로막았다. 왜 가로막냐니까 대답을 못한다. 한 시민이 소리쳤다.
"내 대통령인데 내 대통령의 마지막인데 왜 막느냐? 이유가 뭐냐?"
대답을 못하던 경찰이 마지못해서 길을 터주었다. 분노가 치밀었다. 이건 또 뭐야?
수원 연화장. 이곳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을 DMB로 지켜보며 오열하는 시민. 곳곳에서 탄식과 울음이 들여왔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뒤늦게 도착한 연화장 여기저기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이 나오려하는데 꾹 참았다. 난 울 자격도 없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이종석 전 장관이 시멘트 바닥에 앉아서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인사를 할려다 말았다. 이 상황에서 반갑다고 표현해야 하겠는가 어쩌겠는가? 그 분들의 감정을 흐트리고 싶지 않았다.
2시간 가까이 지난 저녁 9시 무렵, 한 줌의 재로 변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노건호씨에 들려 나왔다. 뒤이어 기진맥진한 권양숙 여사가 부축을 받으면서 따라 나오고 있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되어 화장터를 나오고 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슬픔에 빠진 이창동, 유시민, 강금실 전 참여정부 장관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이 낯선, 상상조차 못하던 이 장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겠다던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 몰아친 가혹한 살아있는 권력의 야만성에 분노가 치밀었다. 잘못된 것은 비판받고 처벌 받아야 하지만 그 처벌 또한 정당한 절차와 방법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토끼몰듯이 온갖 수모와 모욕을 안겨주는 인민재판식 여론몰이를 한 살아있는 권력과 그 권력에 기생하는 언론에 가슴깊은 분노가 일었다.
봉하마을로 향하는 운구차량.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국민장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던 차량들이 봉하마을로 향하고 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버스가 다시 봉하마을로 떠났다. 밤 늦은 시간이라 김해로 내려가는 버스에 편승하여 연화장 입구까지 내려왔다. 버스안에는 오늘 영결식을 종합하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울컥 울음이 쏟아졌다. 옆자리에 앉으신 중년의 여인 또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셔틀버스가 운행된다던 곳에서 내렸다. 노사모 초대회장을 지냈던 김영부 형님이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침울해 하는 형님에게 힘내시라고 말했다.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부럽기도 했다. 저 분을 주군으로 모셨던 '당신들이 행운아입니다'라고.
식당에 들어갔더니 영결식을 지원나왔던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주문이 들어가지를 않았다. 경찰들이 우선이었다. '밥 먹는데도 권력이 우선이구나.' 그래 '내 돈 너희 식당에 안준다' 다짐하고 서울로 향했다.
피곤이 몰려들었다. 일주일을 긴장감 속에서 보냈고 오늘은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그냥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서울역앞 분향소는 어떻게 될까? 그래 서울역으로 가자.
서울역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30분 쯤이었다. 공식 분향시간이 자정까지라 자정 이후가 궁금했다. 간간히 애도를 표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12시 직전에 여든살이 넘어보이시는 할머니께서 부축을 받으면서 조문을 했다. 이후 분향소를 지켰던 민주당 당직자들과 몇몇 관계자들이 흐느끼면서 조문을 마쳤다. 이후 상조회사 직원들이 조문을 마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사진을 조심스럽게 내렸다. 서울역 시계는 0시 12분을 지나고 있었다. 상조회사와 분향소 관계자들에 의해 옮겨진 영정은 흰색천에 가로싸여 봉고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내려지고 있다. 서울역에서.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그가 떠난 빈자리. 살아남은 자들이 채워야 할 그의 빈 자리가 커 보인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길고 길었던 일주일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저 아이가 살아가야 할 이 땅에 그 분이 남긴 가치가 구현되는 그 날을 꿈꾸며.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대통령 선거 전날, 정몽준 대표의 후보단일화 파기 선언에 울면서 택시를 타고 집에 갔었고 당신의 대통령 당선에 환호성을 지르고 당신의 정치에 비판을 하던 '그'가 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기에 당신의 서거에 큰 슬픔을 표현하며 마지막 일주일을 두서없이 남깁니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에 삼가 명복을 기원합니다. 아! 바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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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23일. 4번째 비금도 여행이었다.
애초에 섬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번잡하고 난삽한 무리들을 꺼려하는 탓도 있지만 지난 5년 동안의 피폐해진 삶을 재정비하는데 섬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떠돌면서 밑반찬 조달하기에 쉬우리라는 얄팍한 계산도 있었다. 몇달 동안 신안군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사전답사를 하고나서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고 작정하고 나선 길이었다.
22일 저녁 늦게 출발하여 밤 늦도록 달려서 도착한 목포에서 3시간 남짓 휴식을 취하고 목포 북항에서 비금도행 첫배에 올랐다. 목포에서 신안군의 각 섬으로 들어가는 항구는 크게 3곳으로 구분된다. 목포 여객터미널과 목포 북항, 그리고 압해도 송공항이다.
목포 북항에서 출발하는 비금도행 첫 배.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비금도행 배는 목포 여객터미널과 목포 북항 두곳에서 출발하는데 첫배가 목포 북항이다. 사람만 타고 갈 때는 목포여객터미널에서 쾌속선을 타는 것이 유리하지만 섬 지방을 여행하는데 차량이 없으면 많은 어려움이 있다. 섬의 규모가 커서 도보로 이동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이다.
비금도행 농협 차도선(철부선). 차량과 사람을 동시에 수송 가능한 배를 차도선이라고 한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비가 내리는 아침.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그리 나쁘지 않은 날씨인지라 카메라를 정비하고 과자 한봉지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문득 새벽바람을 느끼고 싶어서 차도선 이곳 저곳을 걸어다녔다. 한쪽에서 조화가 발견되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보내는 살아있는 자의 예절이리라. 삶과 죽음이 어느 곳인들 없으리랴마는 몇 시간 후 비금도에서 또 '다른 죽음'을 맞이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한민족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할 그 죽음을.
차도선 한쪽에서 조화를 발견했다. 섬 또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관념적인 생각이 들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잔잔한 바닷물결 위로 어슴프레 새벽을 지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그 날이.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도착하자마자 섬 이곳저곳을 탐방했다. 사람구경하기가 어려운 섬의 이른 아침이라서 더더욱 텅 빈 섬처럼 느껴졌다. 비까지 내려 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해수욕장 부근에 차를 세우고 물을 끓였다. 새로 구입한 스노우피크(snow peak) 가스버너의 성능에 만족해 하면서 티타늄 커피포트의 무게와 이중구조로 된 찻잔의 보온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새로 구입한 스노우 피크社의 가스버너인 기가파워 마이크로맥스와 몽벨社의 티타늄 커피포트. 가스버너는 작게 접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되었으며 티포트는 티타늄을 사용하여 가벼운 것이 특징이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커피 한잔을 맛있게 마시고 명사십리(明沙十里) 해수욕장을 가로질러 보았다. 명사십리는 함경남도 갈마반도가 워낙 유명하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곳이어서 남한에서 통칭되는 명사십리는 완도 명사십리나 선유도 명사십리를 지칭하지만 이곳 비금도 또한 명사십리가 존재한다. 이름대로 하자면 밝고 고운 모래밭이 10리, 즉 4Km 정도가 되는 해수욕장이어야 하는데 정말 4Km가 되는지 궁금해서 커피를 마셨던 곳에서 반대편까지 차량으로 실측을 해 보았더니 2.5Km가 약간 넘었다.
비금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모래가 단단해서 차량으로 가로질러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바람을 이용한 풍력발전이 시작되었다. 3MW급 풍력발전이 가능하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명사십리 해수욕장에 핀 나팔꽃. 소금기운이 강한 해풍에 견디는 것이 새삼스럽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명사십리에 이웃한 원평해수욕장까지 합산하면 4Km가 넘는 되는 긴 해수욕장이 되는데 원평해수욕장은 해수욕장으로의 기능보다는 항구로서의 기능이 더 발달했던 것 같다. 고운 모래가 씻겨져 나가고 날카로운 굴무더기가 곳곳에 드러나 있었다. 항구를 새롭게 정비한 것 같은데 포구 주변은 폐건물 잔해가 가득하고 배를 묶어 두었을 쇠기둥의 규모가 상당한 걸로 보아서 상당히 번성했던 항구로 짐작되었다.
원평항의 모습. 멀리 등대가 보인다. 배를 묶어두었을 쇠기둥의 규모가 상당한 걸로 보아서 규모가 상당한 항구였던 것 같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해수욕장에서 나와 내륙으로 들어왔다. 신안군 전체를 둘러보면 관계수로가 상당히 발달해 있다. 섬에서 벼농사가 가능하겠는가라는 막연한 예측은 섬 곳곳에 잘 정비된 수로나 급수시설을 보면서 달라진다. 삶을 능동적으로 개척해왔을 섬주민들의 노력을 생각하기에 이르면 찬탄으로 바뀐다. 역사적 사실로 놓고 보더라도 암태도 소작쟁의나 하의도 토지항쟁 같은 일이 벼농사가 발달하지 않은 척박한 농토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에 새삼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수로가 발달한 비금도의 한 마을 입구. 이 정도 규모의 수로가 신안군 섬 전체에 두루 널려있다. 김제평야와 같이 드넓은 곡창지대에나 있을 것 같은 이러한 시설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발달된 비금도의 수로.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논 입구에 잘 정비된 농업용수용 시설. 벼농사에 물은 필수요소이며 물관리가 벼농사의 절반이상이다. 섬에서 이러한 시설을 확인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으나 자연조건을 극복하기위해서 흘렸을 수많은 땀방울들에 경의가 느껴진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벼농사가 발달한 신안 일대의 섬. 이곳 비금도 또한 논이 많다. '섬초'라 불리는 시금치가 유명한 농산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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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발상지가 강(물) 주변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간은 물을 떠나서 살 수가 없다. 섬 또한 마찬가지 이다. 바닷물에 둘러싸인 섬에서 물은 절대조건이다. 식용수는 어떠했을까란 생각에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마을 중심에 자리잡은 우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중심에 우물이 보였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 우물에 뚜껑이 덮혀 있었다. 우물터 주변이 규모있게 널찍한 것으로 보아 수량이 풍부했던 것 같다. 우물은 가장 중요한 공동시설이었다. 버킷펌프가 도입되면서 가정용 수도시설이 정비되고 우물이 폐쇄되는 과정이 산업화와 함께 진행되었다. 공동체 생활이 무너지는 과정에 수도시설의 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물과 함께 인간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가 소금이다. 이번에는 염전을 찾아가 보았다. 비금도는 우리나라 중부이남에서 가장 먼저 천일염이 생산된 곳이다. 박삼만이라는 어른이 일본인에게 징용으로 끌려가 평안도의 어느 염전에서 염부로 노역을 하다가 해방이 되어 돌아와 섬주민들에게 소금 만드는 것을 전수했고 이후 동양최대 규모의 대동염전이 조성되면서 천일염의 역사가 새롭게 씌여졌다. 특별한 교과과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부에서도 비금국민학교를 염부양성국민학교로 지정하여 소금생산을 독려하였다고 한다. 최초의 특수목적국민학교였을까?
비금도의 염전. 비금도의 천일염은 세계적인 명품이다. 신안 소금의 미래는 밝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하얀 것이 소금결정이다. 이곳 사람들은 결정이 맺어지는 것을 소금꽃이 핀다고 표현한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이세돌기념관으로 바뀐 비금대광초등학교. 이웃한 비금초등학교는 예전에 염부양성국민학교였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또 다른 염전을 찾아볼 요량으로 차를 돌렸다. 이른 아침에 낯선 땅을 배회하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는 듯해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비까지 내리는 날씨에 웅크리고 있기에도 뭐해서 들어간 곳이 수림마을이었다. 마을회관 구석에 자리잡은 정자가 오래된 형태는 아니지만 기둥나무의 수령이 상당하다. 문득 이 마을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저 정도되는 나무를 사용하여 정자를 만들 정도면 역사가 있는 마을이 아니겠는가? 시골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묘한 인지부조화를 느끼게 되는데 바로 이런 느낌이었다. 역사는 있으나 그걸 증명하기에는 여러요소가 부적합하여 이것저것을 무리하게 끼워맞추다보니 뭔가 균형을 잃어버린 느낌이랄까?
수림마을회관 한켠에 자리잡은 정자. 나무의 수령은 상당해 보이나 지붕은 요즈음의 조악한 양산품이고 형태 또한 조화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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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이곳 수림마을은 약 400년 전 밀양 손(孫)씨가 정착하여 강릉 유(劉)씨의 딸과 혼인하여 살아왔는데 천년 연못과 울창한 나무가 있어서 수림(樹林)리라고 불렸단다. 현재는 67가구 136명이 거주하는 마을로 대부분이 연로하신 두 내외를 제외하고는 사람이 없는 그런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젊은 사람이 떠나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쳐버린 그런 마을이었다. 사람(인류)이 생존하는데 물과 소금 말고 또 필요한 것이 후손 아니겠는가? 그 후손이 사라진 곳이라면 죽음의 땅이 아닐까? '미래'가 없어진 곳은 곧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희망이 없는 땅에 몸을 의탁할 민초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사라진 마을의 '남겨진 삶'이 궁금해졌다. 비금도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으나 그날따라 마을 주민을 볼 수가 없었다. 배에 실려있던 조화의 도착지를 알 수 있었지만 지나쳤다. 바람과 같은 방랑객이라 조의를 표하는 것 또한 그렇지 않은가?
섬은 또한 바람의 고향이다. 바람을 어떻게 이용하고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중요한 삶의 지혜였다. 논이나 밭 주변으로 방풍림이 조성되어 있었다. 신우대 같은 촘촘한 수종이 많았다. 울타리가 촘촘할수록 모래바람에 대한 대비가 완벽했을 것이다.
미경작중인 논 주변으로 조성된 방풍림. 신안군 섬 전체가 바람과의 싸움이었으리라.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사람이 거주하는 주거공간 또한 돌로 된 담장이었다. 옛날에는 대부분이 돌담장이었겠지만 지금에 돌담장을 만나는 건 행운에 가깝다. 아름다운 돌길로 보존되고 있다는 안내판을 보니 이곳 비금도에도 돌길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모양이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돌담. 이제 이러한 돌담도 블록과 시멘트에 밀려 점차 사라지고 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세상사 바뀌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마는 바뀌지 말아야하고 사라지지 말아야 할 절대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의 손길이 묻어있을 저 돌담장길이 몇백년 뒤에도 온전히 보전되어 있기를 바라며 비금도 행정타운으로 차를 돌렸다. 필름카메라의 배터리가 방전되었기 때문이다. 면사무소 주변으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여러 기관들이 밀집해 있었다. 자장면을 파는 중국집도 보였다.
비금 파출소 전경. 오른편에 인권침해센터 현판이 걸려있다. copyright(c) All rights reserved by humanpark.com
전파사를 찾다보니 비금파출소가 보였다. 지구대로 바뀐 파출소라는 단어를 이곳에서 확인하니 시간이 거슬러 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에 걸린 인권침해센터라는 현판이 새삼스럽다. 문득 '새우잡이 배' 라는 인권의 사각지대가 떠 올랐다. 새우잡이 배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수백년 동안 사용된 무동력선으로 다른 배가 끌어주지 않으면 이동이 불가능해서 '멍텅구리 배'로도 불린다. 스스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일이 고되고 험하기로 소문난 새우잡이 배를 누가 타려고 했겠는가? 이 배에 사람을 납치 또는 유인해서 강제적으로 새우잡이를 시켰다고 하고 지금도 간혹 새우잡이 배에 팔려간 소식이 들려오니 이 땅에서 인권은 멀기만 한가보다.
파출소를 지나 전파사를 찾아가 보니 이른 아침부터 주인장께서 뭔가를 열심히 수리하고 계신다. 무심코 TV를 보니 전직 대통령의 옛날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옛날화면? !
" 어! 대통령 돌아가셨어요?"
"그랬다고 안하요."
유통기한이 지난 건전지라 돈을 받지 않겠다는 주인장께 건전지 값을 지불하고 나오는데 비로소 머리가 멍해졌다. 대통령의 죽음? 왜? 사고인가?
DMB는 먹통인 지역이라 서둘러서 차량의 라디오를 켰다. 급하게 쏟아져 나오는 기자들의 뉴스 코멘트가 이어졌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듯 기자들의 어감은 차분하다 못해서 얼어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발견되었습니다.~~."
아! 어떻게 이런 일이----. 솔직히 첫 느낌은 충격적이라기 보다는 당혹스러웠다. 그 당혹스러움이 나중에야 어렴풋이 해석이 되었지만. 왜? 무엇때문에?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소식들었냐? 뭔 천둥이냐?'
'TV보고있다'
신안군의 섬에서 접한 충격적인 뉴스에 시공간개념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생각은 빨리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 뿐이었다. 서둘러서 선착장으로 갔으나 목포로 나가는 배는 오후 1시가 넘어야 있다고 했다. 라디오를 통해서 속보가 쏟아지고 있었으나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할 일이 특별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기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섬을 나와야 했다.
또 다시 운전을 하고 올라갈려면 배는 채워야 했기에 배가 오는 동안 식사를 할 요량으로 선착장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TV에서는 무심하게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알리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TV뉴스의 차분한 앵커의 목소리가 이질감을 촉발시켰다. 식당 주인도, 간간이 눈에 띄는 선착장의 사람들도 평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죽음에 서거라는 단어를 쓰기로 했다는 기자의 멘트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이 죽었는데 변하는게 하나도 없었다.
'그곳'은 '섬'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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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아이들 큰일 났어요?"
"TV가 아이들을 망치는 거죠"
"그러게요. 어떻게 강감찬 장군을 메가패스라고 할 수가 있어요?"
"--;;"
광화문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
몇 년 전, 한 이동통신 업체의 TV광고 영향으로 초등학교 아이들이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고 메가패스 장군이라고 부르자 이걸 보고 지나가던 30대(代) 아주머니가 세태를 한탄하면서 했다는 유명한(?)이야기다.
충무공 이순신을 흔히 성웅(聖雄)이라고 칭한다. 단순한 영웅이라는 호칭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리라. 임진왜란이라는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 구해 낸 민족의 영웅 이순신. 그가 마지막 전투에 갑옷을 벗고 철릭차림으로 임했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가 왜 갑옷을 벗어던지고 철릭으로 전쟁터에 나갔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설득력 있는 해석이 전쟁 막바지에 스스로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목숨을 버리고 역사에 살아남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조선 임금 선조는 백성의 신망을 잃어버렸고 국가를 구한 이순신은 민초들의 절대적 신임을 얻고 있었으며 조선의 가장 강력한 전투병을 휘하에 두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선조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로 급성장했다. 따라서 역성 혁명이 가능했기에 이순신을 압박했고 이순신은 그 정치적 압박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
광화문 광장 조성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이순신 장군 동상주변.
서울 정도(定都) 600년이 넘었다.
아! 충무공 이순신
역사에 가정(假定)이 있을 수는 없지만 충무공이 역성 혁명을 이루었다면 이후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조선은 건국(1392) 이후, 정확히 200년 만에 왜란을 겪었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충무공 이순신에 의해 벗어날 수 있었지만 1627년 병자호란으로 적장 앞에 임금이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을 당해야 했다. 치욕을 당한 임금 또한 선조였다. 왜란을 극복하고도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하여 또다시 능욕을 당해야 했던 민초들. 무능한 위정자를 둔 백성들의 아픔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또 다시 조선은 국가를 강제 병합당하는 국치(國恥)로 나라잃은 망국의 한을 겪어야 했다. 모든것이 위정자들 때문이다.
광화문 교보문고 건물을 배경으로 한 이순신 장군 동상. 오른발을 앞으로 내어 밀고 오른손에 칼을 잡고 계시다.
오른손에 칼을 잡은 것이 항장(抗將 or 降將)의 표현이라 하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장군이 쥐고 있는 칼 또한 우리나라 고유의 검이 아니라 일본도(日本刀)이다.
1968년 4월 27일. 애국선조 조상 건립위원회(총재 김종필)와 서울신문사에 의해서 건립된 이순신 장군 동상. 세종로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자리 할 예정이었지만 독재자는 세종대왕 동상을 덕수궁으로 옮기고 그곳에 무인(武人) 이순신을 불러 내었다. 스스로 정치적 부담을 벗어던졌던 그 영웅을 말이다.
우리 후손들은 필요에 의해서 그를 다시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내었다. 당시 중앙청으로 일본의 기운이 밀려온다 하여 일본이 가장 두려워 하는 인물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이유로. 건립 당시부터 장군의 동상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오른손에 칼을 잡은 것이 항장의 표현이라는 것에서 칼이 일본도라는 것, 시민들을 위압적으로 내려다 본다는 것, 얼굴이 풍신수길을 닮았다는 주장 등등.
당시 동상을 만드신 김세중 교수의 부인 김남조 시인과 유족에 의하면 오른손에 칼을 잡은 것은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영웅 월리엄 월레스나 대천사 미카엘이 모두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는 것이다. 칼은 일본도가 맞다.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는 칼이 일본도라고 한다. 당시 일본칼은 최신예 검이었단다. 일본에 끌려갔다 붙잡힌 도장(刀匠) 태구련(태귀련 또는 태귀운), 이무생이 만든 칼이란다. (2009.1.31 조선일보 인터뷰 내용 참조) 얼굴이 풍신수길을 닮았다거나 동상 제작자가 친일파라는 것은 낭설(浪說)이다.
도시 공간에 가로막혀 버린 충무공의 동상. 충무공의 정신마저 가로막히는 시대의 불운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또 다시 광화문에 세종대왕 동상을 세워야 한다거나, 이순신 장군 동상을 옮겨야 한다거나, 새로운, 더 큰 장군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이러한 논란의 근저에는 오세훈 서울 시장이 광화문 조성공사를 하면서 촉발된 측면이 크다. 도심을 재창조하여 광화문을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공사이다. 이러한 공사로 인하여 충무공 이순신과 동상 제작자와 유가족이 상처를 입어서는 곤란하다.
정신이 물질화된 동상
동상이 무엇인가? 정신의 물질화가 아닌가? 광화문 앞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무엇을 상징하겠는가? 구국의 영웅 이순신이 나라를 구했듯이 건립 당시의 위정자가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무언의 표현 아니었겠는가? 독재자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충무공이었다고 해서 건립의 의미가 확대 재생산 되어서는 안된다. 동상이 웅변하는 시대는 억압의 시대이다.
동상이, 역사속 인물이 후손에 의해서 등장되어 지는 것은 물질의 숭배가 아니라 물질화된 정신의 가치숭배이다. 이순신이 군인이었기에 군인 출신 독재자가나라를 지키는 인물로 정당화 되어서야 되겠는가? 충무공 이순신이 누구인가?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고자 갑주(甲胄)를 벗고 철릭으로 전투에 임해 죽음을 택했던 인물아니시던가?
무능한 임금 선조, 부패한 위정자들. 전쟁으로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칼을 고쳐잡고 조선을 장악할 실질적인 힘이 있었던 충무공이었다. 그 충무공이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군인은 전쟁터에 있어야 정당성이 발생한다. 군인이 나라를 탈취했던 시대에 그러한 정신으로 목숨을 버린 한 분의 동상을 끄집어 낸 위정자들의 의도가 불순하다. 존경받는 역사속 인물들의 동상을 세워 그 분들의 후광을 얻겠다는 것 아닌가?
충무공의 정신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위정자들의 얄팍한 술수도 안된다.
이제 장군의 갑주를벗겨드려야하지않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부르면 나타나는 '애니콜'은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의 갑옷을 벗겨 드려야
어차피 세워진 동상이고 세워질 동상이라면 위인들의 삶과 정신이 드러나야 한다. 충무공은 올바른 군인의 길을 살다 가셨다. 그 분은 진정한 무인이셨다. 그 분의 동상을 세운 사람도 군인이었다. 그러나 두 군인의 정신은 달랐다.
한 분은 칼로 나라를 지켰고 한 사람은 칼로 나라를 취탈(取奪)했다. 우리의 정신속에 갇혀버린 충무공 이순신은 항상 갑주차림이다.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참군인으로 살다 가신 분. 이제 그 분의 갑옷을 벗겨드릴 때가 되지 않았는가? 또한 다른 방법으로 칼을 잡았던 독재자에 대한 증오의 칼도 거둘 때가 되었다.
그가 세운 충무공의 동상이 모든 것을 역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주를 벗은 충무공 이순신의 동상이 세워지는 그 날, 군인의 칼이 어떠해야 한다는 것이 명증하게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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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空間), SPACE
1. 아무것도 없는 빈 곳.
2.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3.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
4. 물질이 존재하고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나는 장소<물리>.
5. 시간과 함께 세계를 성립시키는 기본 형식<철학>.
6. 어떤 집합에서 그 요소 사이 또는 그 부분 집합 사이에 일정한 수학적 구조를 생각할 때, 그 집합을 이르는 말<수학>.
서울특별시 강남구 구룡역 입구의 풀 숲. 대도시에서 이러한 생태환경을 보기가 어렵다. 2009.2.23.
인간은 유한(有限)하다. 불멸(不滅)의 꿈을 꾸었던 시황제와 동방삭(東方朔)도 불멸을 이루지는 못했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언젠가는 사라지는 시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시간은 평등하다.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질이 존재할 수 없고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존재하는 공간이 불평등하다면 물질(인간)이 불평등하게 되고 시간이 불평등해진다.
인간은 생존이 쉬운 공간에서 군집을 이루고 가족을 만들고, 집단이 형성되고 역사가 시작되었다. 개인이 사회를 형성하고 집단이 국가를 이루었다. 생존을 위한 무리가 사회적 인간이 되면서 계급에 따라 생존의 용이성이 결정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도시는 생존경쟁의 전장(戰場)이다.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생존하고 생존하기 위해서 경쟁한다. 경쟁은 계급을 만들었다.
역사 속에서(시간 속에서) 인간이 평등한 적이 있던가? 높은 계급이 생존에 용이한 공간을 점령하고 낮은 계급이 높은 계급을 위해서 시간을 소비한다. 불평등한 시간 속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공간만 남았다. 공간은 차별의 시작이다.
개포고등학교 인근에서 바라 본 타워팰리스. 대한민국 고급 주거문화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최고급 아파트. 2009.2.22
도시(공간)는 필연적 결과물이다.
지배권력의 상징이던 고궁을 보라. 권력은 시간을 지배한다. 공간을 지배하던 권력자가 사라지고 난 공간은 아직까지 존재한다. 권력자에 봉사하던 수많은 민초들의 공간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인간의 존재역사가 만들어 낸 수많은 공간유물의 압도적인 숫자가 지배권력자와 관련된 것이다. 고인돌이 그러하고 왕릉이 그러하고 궁궐이 그러하다.
왕권국가 조선의 정전(正殿)인 경복궁 근정전. 권력자는 사라지고 권력의 상징인 공간만이 남아있다. 2009.2.22
절대권력자가 사라진 민주시민의 공간은 어떠한가? 여러분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사회적 공간으로서 서울이 지방과 다르고 강북이 강남과 다르며 점유공간의 크기가 다르다. 생태계을 보라.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맹수가 모든 공간을 지배한다. 그러나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야수는 일정영역만을 지배한다. 생존에 필요한 더 이상의 공간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생존을 위한 공간을 넘어서 지배하기 위해서 공간을 확장한다. 다른 사람의 생존 공간은 쟁탈의 대상일 뿐이다.
개개인의 점유공간의 차이는 개개인의 계급의 현위치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지표이다. 공간(주거지역)이 교육을 지배하고 경제를 지배하고 의료서비스의 차이를 만들고 생존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우월적 공간이 우월적 교육을 만들고 우월적 교육이 우월적 공간을 지배하는 생존경쟁의 불평등을 고착화 시킨다.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바라 본 타워팰리스. 구룡마을에는 연탄을 난방 수단으로 사용하는 주민이 많다. 2009.2.22
도시는 아파트다.
대한민국 구성원에게 집이라는 공간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그 각별한 의미는 상처이자 영광이다. 사글세와 전세 그리고 내 집. 대한민국이 점유한 공간의 협소가 대한민국 구성원의 공간의 제한이고 공간의 제한이 '내 집'에 대한 트라우마를 형성했다. 그 집에 대한 열망이 유례없는 아파트 신화를 구성했다. 아파트는 주택에 비해서 공간 확장성이 크다. 그 공간확장성에 대한 막연함이 공간 차별의 출발점이다. 10평짜리 주택이 30평 아파트가 되고 헌집이 새집이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내집마련과 주거환경 개선이라는 명제는 사라지고 탐욕에 가득한 투기꾼의 발톱에 해체를 기다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아파트 건설현장이다. 원거주민은 떠나고 이윤(利潤)에 밝은 사람들은 몰려온다.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이윤이 거품을 만들어 내고 그 거품은 터전을 빼앗긴 가난한 서민의 눈물을 만들었다.
민주주의를 지배이념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주거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다. 명목상의 주거의 자유는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거주지역의 제한을 가져오는 것이 자본주의의 역할은 아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점유공간은 인정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월성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들이 대한민국에는 왜 이렇게 많은가? 그 뻐꾸기들이 남의 둥지를 차지하는 자유로운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 녹색혁명인가?
뉴타운 예정지역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서 거주민인 할머니가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 2009.2.22
녹색은 생명이다. 녹색혁명은 생태적이다. 따라서 차별의 공간을 생태적으로 재구성하는 녹색혁명은 아파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에게 묻고 싶다.
서민들이 생존을 위해 밥터를 지키겠다는 울부짓음을 삽질로 때려잡는 것이 당신들의 대한민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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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0 copyright(c)
왼손잡이는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많이 쓰는 사람이다. 보통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사람을 왼손잡이로 규정하지만, 왼손잡이가 다른 일도 왼손으로 주로 하는 것은 아니며, 양손잡이도 많다.
오른손보다 왼손을 더 많이 쓰는 사람들. 인터넷에서 왼손잡이를 검색해보면 위와 같은 글이 나온다. 다음과 같은 친절한(?)설명도 있다.
1998년의 연구에 따르면 7에서 10퍼센트의 어른이 왼손잡이라고 한다. 연구들에 따르면 왼손잡이는 여자보다 남자에 더 많다고 한다. 다른 일반인들에 비해, 일란성 쌍둥이의 왼손잡이 분포가 더 많다고 한다. 그리고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 간질, 다운 증후군, 자폐증, 정신 지체,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도 왼손잡이가 많다. 통계적으로 일란성 쌍둥이의 76퍼센트에 왼손잡이가 많은데, 그 이유에 대해 유전적, 환경적인 설들이 있다.오른손잡이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에 많은 물건들이 오른손잡이를 위해 고안되었다. 가위나 라이플 등은 왼손잡이가 쓰기에 아주 불편하다. 대부분의 머그컵도 오른손잡이가 잡았을 때, 그림이 바깥쪽으로 보이도록 되어 있다.
‘다른 일반인들에 비해’라는 표현이 있다. 일반인이란 어떤 뜻인가?
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갖지 아니하는 보통의 사람.
유추해보면 왼손잡이는 특별한 지위나 신분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특별한 사람은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전체인구의 10%가 왼손잡이라면 대한민구 인구의 400만명은 유전적으로 결함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야 한다.
다시 인터넷을 보자.
차별(差別, Discrimination)은 종교, 장애, 나이, 신분, 학력, 이미 형(形)의 효력이 없어진 전과, 성별, 성적 지향, 인종, 신체 조건, 국적, 출신 지역, 이념 및 정견 등의 이유로 고용, 교육 시설 및 직업 훈련 기관 이용시 특정인을 우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여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난 왼손잡이다.
태어나서부터 왼손잡이다. 왼손을 쓰라고 조기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고 오른손을 쓰는 조기교육을 못 받아서도 아니다. 유년의 어느 때부터 왼손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왼손은 차별과 부끄러움의 대상이었다. 그 ‘부끄러운 왼손’은 ‘짝빼기’라는 차별의 이름을 가진 놀림의 대상이었으며 ‘무엇이든 어설픈’ 조롱거리였다. 왼손으로 젓가락을 사용했기에 어른들의 꾸중으로 식사시간은 고통의 시간이었으며 왼손으로 쓴 글씨는 ‘쌍놈글씨’라고 해서 강제로 오른손에 연필을 쥐게 되었다.
그 고통의 유년시절 때문에 난 ‘어설픈 짝빼기’에서 벗어나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글씨를 쓰는 ‘일반인’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강제로 퇴화된 나의 왼손을 볼 때마다 슬픔과 비애를 느낀다. 차이가 차별의 대상이 되는 사회에서 종교, 장애, 나이, 신분, 학력, 전과, 성별, 성적 지향, 인종, 신체 조건, 국적, 출신 지역, 이념 및 정견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차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가 민주주의를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헌법조문으로만 따지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
그러나,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겪는 차별, 그 차별이 일상화 된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차별은 명백한 범죄행위이다. 범죄행위가 일상적인 사회나 국가는 범죄집단이다. 민주공화국도 범죄집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수많은 범죄행위에 우리는 침묵하고 방관하고 또 외면한다. 다수결, 힘의 논리에 의해서 진실과 정의는 살해당했다.
힘의 논리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진실과 정의가 희생된 민주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더 이상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에 날지 않는다. ‘부엉이와 올빼미’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양육강식이고 적자생존이다. 비겁하다.
지식인이라는 인간들이 객담으로 특정지역을 비하한다. 충격적이다. 그 더러운 피로 민주주의의 성배를 들다니. 부끄럽다. 범죄행위에 침묵하는 우리는 공모자이며 공범자이다. 그 처참한 살육의 현장에서 우리는 피의 씻낌굿을 연출해야 한다.
나는 고발한다. 범죄국가 대한민국을.
차별을 넘어 새 세상을 꿈꾸며
2009년 2월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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